실력으로 美 실리콘밸리 ‘대나무 천장’ 깨는 한인 스타트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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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30. 오전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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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밸 레이더]
타이거글로벌 투자받은 몰로코

안익진 몰로코 대표. /몰로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AI(인공지능) 맞춤형 모바일 광고 플랫폼 ‘몰로코(MOLOCO)’가 최근 15억달러(1조75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명 VC(벤처캐피탈)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로부터 1억5000만달러(1750억원)를 투자받았다. 몰로코는 구글 출신 안익진 대표와 오라클 출신 박세혁 CIO(최고정보책임자)가 2013년 공동 창업한 한인 스타트업이다. 몰로코는 구글과 페이스북이 장악한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 50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전년대비 100%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몰로코는 모바일 앱에 특화된 광고 플랫폼에 집중한다. AI를 이용해 모바일 앱의 광고 효과를 최대화하는 방식이다. 2013년~2017년까지는 매출이 거의 없었지만, 머신러닝(심화학습)을 이용해 자체 개발한 광고 최적화 알고리즘을 적용하면서 지난 4년 동안 가파르게 매출 성장 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초에는 유니콘(1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평가 받는 스타트업)으로 급부상했고, 이번에 세계 최고 투자사 중 하나인 타이거글로벌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몰로코는 이번 투자금으로 디지털 광고 시장뿐 아니라 이커머스에 최적화된 상품 추천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할 계획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로 영역을 확장한다는 점에서도 가히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성장을 기대해볼 만하다.


몰로코에 투자를 한 타이거글로벌은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위세를 떨치는 VC다. 올해만 벌써 10조원 이상을 스타트업들에 투자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규모를 넘어섰다. 타이거글로벌은 성장 가능성이 큰 스타트업에 대규모로 빠르게 투자하면서 유수의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냈고, 투자사로서 투자 실적도 인정받고 있다. 집에서 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펠로톤(시총 36조원)’,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시총 58조원)’ 등에 투자했고, 투자한 90여개의 스타트업이 증시에 상장할 정도로 괄목한 만한 실적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타이거글로벌이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한 것은 2년 전 샌드버드에 이어 이번이 2번째다.

사실 실리콘밸리에서는 몰로코의 투자 유치보다 타이거글로벌이 몰로코를 선택했다는 점에 더 주목한다. 한인 창업자가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매출을 만들어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고 유니콘이 됐다는 것이 감격스럽다.

미국에서 사업을 시도하는 한국인이 미국 현지에서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영어에 능숙하고 미국 회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인 초기 회사가 미국에서 투자 유치하는 것은 녹록지 않다. 독일 사람이 한국에 와서 서툰 한국말로 청바지를 파는 스타트업을 창업한다고 할 때, 투자 유치가 쉽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 사람도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해 성공하기 어려운데 다른 나라 사람이 한국에서 사업하기는 쉽지가 않다는 의미이다.

이기하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대표

하지만 실력으로 회사가 성장하면 이 사람이 독일인인지, 한국인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이 독일 사람이 1000억원의 매출을 만들어냈다면 많은 투자자가 투자를 하고 싶어할 것이다. 매출로 시장에서 사업 모델이 검증되었고, 비즈니스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면 회사의 기업 가치는 충분히 높아질 수 있다. 이는 미국에서 활발히 사업하는 한인 창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글라스 실링(유리 천장)’이라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올라가면 분명히 더 올라갈 수 있는 위치가 보이는데도 여러 가지 차별로 유리에 막혀서 더는 못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는 ‘뱀브 실링(대나무 천장)’이란 신조어가 들린다. 대나무는 아시아를 뜻하는데, 미국 내 아시아인들에 대한 차별을 의미하는 씁쓸한 표현이다. 이러한 차별은 스타트업에도 존재한다. 이를 깨는 건 역시 실력뿐이다.

스타트업 초기에는 매출이나 지표 성적이 좋지 않아 투자 유치가 어렵다. 그래서 많은 벤처캐피탈이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창업자의 비전과 팀워크를 보는 경우가 많다. 어떤 문제를 발견했는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어떤 팀과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한 창업자의 생각과 태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탄탄한 실력과 비전을 앞세운 스타트업이 초기 투자 유치를 통해 시장에서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받고 어느 정도 규모의 매출이 발생한다면 그 다음번 펀딩은 처음보단 쉽다.

에릭 위안(가운데) 줌(Zoom)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작년 4월 직원들과 함께 나스닥 기업공개(IPO)를 자축하고 있다.

코로나 기간 중 대폭 성장한 화상 회의 플랫폼 ‘줌(ZOOM)’은 중국에서 이민을 온 에릭 위안이라는 창업자가 시작한 회사다. 그는 영어도 잘 못한다. 하지만 실력으로 120조원의 기업 가치를 일궜고 대나무 천장을 깬 성공 사례로 꼽힌다.

다행히 최근 실력 있는 한인 스타트업들은 시장에서 차츰 인정을 받고 있다. 몰로코, 샌드버드, 눔, 피스컬노트 등 4개의 한인 창업자 기업이 유니콘이 되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5년 후엔 기업 가치 100조원을 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실리콘밸리에서 한인 창업자의 성공스토리는 한국의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설계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선사하고 있다. 뱀브 실링을 깨는 건 역시 실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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