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전세·마통… 부동산 대출중단 도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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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21. 오전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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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실패로 집값 올려놓은 정부, 집값 잡겠다며 ‘대출 조이기’
농협 이어 우리·SC제일銀까지… 2금융권에도 “돈줄 관리” 지침
“11월 잔금 어떡해” “전세금도 못빌리나”… 대출 절벽에 패닉

20일 오후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점 개인대출 상담 창구에서 한 고객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전날 농협은행이 11월 말까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등 부동산 관련 모든 신규 대출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이날은 우리은행, SC제일은행, 농협중앙회 등이 부동산 관련 대출 중단 등을 발표했다. /뉴시스

우리은행이 20일 대출 한도 소진을 이유로 9월 말까지 전세 대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SC제일은행도 일부 부동산담보대출을 중단키로 했다. 농협중앙회는 농협과 축협의 집단 대출(부동산 단체 대출)을 당분간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날 NH농협은행이 오는 11월까지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중단하기로 한 데 이어 부동산 관련 대출 중단이 확산되고 있다.

대출 축소는 가계대출 증가율을 연간 6% 이내로 억제하라는 지난 4월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다. 일부 은행에서는 마이너스 대출 한도 축소 등 개인 신용 대출 줄이기도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저축은행중앙회, 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등 제2 금융권에도 가계 대출 증가세를 자율적으로 관리해달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NH농협은행이 오는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신용대출을 제외한 신규 가계 부동산담보대출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점 대출 창구에서 한 시민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불어나는 가계 빚을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가운데 은행과 제2금융권까지 전방위적으로 대출 관리에 나서면서 ‘대출 절벽’사태가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날 은행 지점들에는 만기 연장이나 대출 승인이 막히는 것을 우려하는 문의가 빗발쳤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도 아파트 잔금 등을 내기 위해 대출을 알아보는 실수요자들의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은행들의 대출 중단은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와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가계 대출 관리를 강조하면서 속도가 붙고 있다. 고 후보자는 지난 17일 “가계부채 관리는 지금 금융위원장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책무”라며 “가용한 모든 정책수단을 활용해 추가 대책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금감원은 최근 은행의 1억원 이하 신용대출 한도를 기존의 절반으로 낮추도록 했다.

가계 대출이 1700조원을 돌파하고 증가 속도도 빠르지만, 대출 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을 하는 것은 실수요자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 대출이 급증하긴 했지만, 정부의 대출 통제 방식은 지나친 정도를 넘어섰다”라며 “은행 대출이 막히고 2금융권 문턱까지 높아지면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지난달 가능한 대출을 모두 끌어다가 경기도 안산의 아파트를 8억원에 계약했다. 전세 보증금을 빼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이사를 가려고 준비 중이다. 그는 “농협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한다는 뉴스를 보고 11월 초 내야 할 잔금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너무 걱정된다. 최악의 경우 계약금을 날리고 이사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출을 받을 계획이 있거나 기존 대출 만기를 앞둔 이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리스크(위험)와 기회를 판단해 자금 운용을 할 자유가 있다”면서 금융 당국의 대출 축소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전세 자금 대출도 막히는 것이냐’, ‘보험사나 새마을금고 대출도 못 받게 되나요’ 같은 글이 수백개 올라오고 있다.

대출 규제 쏟아내고, 금융권 대출 조이는 당국

금융 당국이 마치 ‘가계 부채와의 전쟁’에 나선 것처럼 대출 규제를 쏟아내고, 은행 등을 압박해 대출 조이기를 넘어 대출 중단 사태까지 벌어지게 만든 것은 가계 부채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주식 ‘빚투(빚내서 투자)’ 등이 주택 가격과 주가 상승 등 자산 ‘버블(거품)’을 만들고 있다고 보고 이 거품을 줄이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가계 대출은 작년 1분기 1611조4000억원에서 3분기 1681조8000억원으로 늘고, 올 1분기에는 1765조원으로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2022~2023년으로 예정됐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확대를 앞당겨 조기 실시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에 이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도 대출 한도 축소를 요구한 상황이다. 은행뿐 아니라 카드사, 보험사 등의 대출도 축소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은행권 대출 중단 확산될 가능성

금융 당국의 첫 번째 타깃이었던 은행권은 부동산 관련 대출 중단 도미노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19일 처음 주택담보대출 중단을 발표한 농협은행은 금융 당국이 지난 4월 도입한 가계대출 총량제 규제를 대출 중단의 이유로 들었다. 지난 7월 말 기준 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전년 말 대비 7.1%로 금융 당국이 정한 상한(6%)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농협은행에 최근 여러 차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은행들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나 최근의 대출 증가세를 감안하면 총량 규제가 다소 어려운 은행도 있다. 본지 집계 결과 지난해 말 대비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지난달 기준 가계대출 증가율은 2%대이고 하나은행은 4.4%로 높은 편이다.

신용 대출 조이기도 시작돼

주택대출뿐 아니라 신용 대출도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감원이 1억원 이하 신용 대출 한도를 기존 ‘연봉의 2배’에서 ‘연봉 이내’로 사실상 절반으로 줄이라고 시중은행에 최근 지시하면서 마이너스 대출 한도가 대폭 축소될 조짐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는 20일 신용 대출 한도 축소를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존 마이너스 대출을 억지로 상환하라고 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한도만 받아두고 사용하지 않는 대출은 갱신 시점에 한도를 줄일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민섭 한국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은 “신규 대출을 제한하는 것을 넘어 신용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성실한 대출자에 대한 한도까지 갑자기 줄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그는“정부가 가계 부채를 서서히 줄일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대출 중단 등의 투박한 방법을 동원하면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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