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아니라 중개" 금융당국 조치에…날벼락 맞은 네이버·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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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9.09. 오전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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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판 카카오모빌리티' 나올라…빅테크 저격


금융위원회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대형기술기업)들의 금융시장 공습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었다. 특히 금융회사들의 거센 반발에도 '금융혁신'을 통한 소비자 편익 증대란 명분을 내세우며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을 지원했던 금융위원회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사례에서 보듯 단기적으로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로 소비자들이 혜택을 보는 것처럼 보이나 소비자는 물론 금융회사들이 빅테크에 종속돼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금융당국발 규제신호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일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금융서비스를 크게 제한하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오는 25일부터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파이낸셜 등 빅테크는 자사 플랫폼에서 보험 뿐 아니라 펀드와 연금 등의 비교 견적 서비스를 못하는 게 핵심이다. 플랫폼기업의 서비스 목적이 정보제공 자체가 아닌 판매인 경우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상 '중개'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중개'행위를 하려면 금융위에 등록하거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금융당국의 조치는 빅테크 회사들이 규제를 지나치게 우회해 금융업을 영위하면서 '소비자 보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빗발친 데 따른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상품 설계부터 판매, 마케팅은 물론 지배구조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규제를 받는다.

반면 빅테크 플랫폼 기업은 금융당국의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등을 통해 느슨한 규제를 적용 받거나 정식 금융업자로 등록되지 않으면서 금융업을 영위하며 규제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이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이버의 금융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이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은 후불결제( BNPL, 'Buy now, pay later(지금 사고 나중에 돈 내세요))'다. 현행법상 불가능하지만 금융위가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길을 열어줬다. 금융사가 후불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300명 이상 임직원, 30개 이상 영업점 확보' 등 요건을 갖춰 신용카드업 인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혁신'이란 명분 아래 이 조건을 모두 면제받았다.

조치의 직접적 배경 중 하나는 지난해 7월 네이버파이낸셜이 손보사들과 제휴를 맺고 자동차보험 비교견적 서비스를 추진하면서 판매액의 11%를 수수료로 요구한 것이다. 금융위가 유권해석의 근거로 플랫폼기업이 금융상품 정보를 제공하면서 자사 이용자를 늘리려 영업을 한다는 점과 함께 판매실적에 따라 금융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것을 제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플랫폼 회사들이 고객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으면 결국 그 부담은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고 본 것이다.

네이버파이낸셜 관계자는 "(이 같은 금융당국의 조치에 대해) 발단이 네이버파이낸셜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라며 "현재 금소법에 걸리는 서비스를 영위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만 앞으로 사업을 해 나가는 데 있어 금소반 위반 사례들을 참고할 것"이라고 답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빅테크에 대한 규제 완화가 과도했다고 보고 속도조절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택시 호출요금 인상 시도를 거론하며 "빅테크가 경쟁 없이 독과점적 지위를 갖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빅테크 플랫폼기업의 행태를 보면 한국 재벌이 형성되던 초기의 행태와 유사해 그대로 둘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플랫폼기업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커졌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날 '공룡 카카오의 문어발 확장 : 플랫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 대책 토론회' 축사에서 "혁신 기업을 자부하는 카카오가 공정과 상생을 무시하고 이윤만을 추구했던 과거 대기업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고승범호 금융위, 빅테크 특혜 비판에...180도 태세전환


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이 '금융혁신' 깃발을 내걸고 드라이브를 걸던 혁신 과제가 고승범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재검토' 수순을 밟고 있다. 금융혁신을 위해 추진했던 사안이 곳곳에서 '빅테크'만 수혜를 입는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면서다.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고 위원장 취임 후 금융위 내부에선 금융혁신과 관련한 과제들의 '속도조절론'이 부상하고 있다.

당장 고 위원장이 대환대출 플랫폼과 관련해선 '전면 재검토'를 선언한 상태다. 고 위원장이 든 재검토 이유는 '업권 간 입장 차이'다. 금융권은 대환대출 플랫폼이 도입되면 빅테크에 종속될 수 있다며 반발해왔다. 빅테크가 플랫폼을 제공한 대가로 금융사로부터 중개 수수료를 받는데, 그 수준을 스스로 설정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금융위의 숙원사업이기도 한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 처리와 관련해서도 변화된 기류가 감지된다. 고 위원장이 '한국은행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을 만들겠다'며 금융위가 주장한 원안에서 후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다.

한은은 고유 권한인 지급결제 업무를 금융위가 침범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대해 왔다. 무엇보다도 전금법 개정안은 '종합지급결제사업자(종지사)' 도입을 둘러싸고 기존 금융권이 '네이버 특혜법'이라며 수용불가를 천명했다. 종지사는 은행, 증권사 등과 마찬가지로 고유 계좌를 개설해 선불충전·후불결제 서비스 등 여·수신 업무를 할 수 있지만 금융사로 분류되진 않아 은행법과 증권업법 등을 적용받지 않는다.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에 어긋나는 셈이다. 고 위원장은 각 금융업권과 소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금융혁신 과제 발굴과 추진에 열 올리던 금융위가 이처럼 속도조절을 하는 건 소비자 편익 증대라는 당초 취지와 반대로 빅테크만 특혜를 볼 우려가 커지면서다. 당장은 소비자 편익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빅테크가 시장을 독과점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빅테크가 금융권에서 기존 은행, 금융지주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정도로 커졌지만, 그에 걸맞는 규제와 감독은 받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혁신금융 추진 속도가 빨랐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속도조절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혁신금융을 명분으로 빅테크에 과도한 특혜를 안겨 준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던 금융권에선 금융위에 대해 강하게 성토해 왔다. 빅테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에 금융위가 역주행했다는 것이다. 바젤위원회는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빅테크 규제는 행위중심이 아니라 기관중심이 돼야 한다며 온라인 플랫폼기업을 규율할 수 있는 감독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빅테크의 서비스가 아니라 빅테크 자체에 대해 감독을 강조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존 금융권이 촘촘한 규제에 발이 묶여있는 사이 금융위가 빅테크에 날개를 달아줬었다"며 "말로만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외칠 게 아니라 제도개선을 통해 규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 내부에서도 혁신금융에 대한 회의론이 싹트고 있다. 소비자 효용과 함께 핀테크(금융기술) 생태계를 활성화하겠단 구상으로 야심차게 혁신과제를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빅테크의 급성장만 도운 꼴이 됐기 때문이다. 거대 플랫폼을 앞세운 빅테크들에겐 이제 금융위의 '말빨'이 먹히지 않는다는 반성이 나올 정도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카드포인트 현금화 서비스'가 대박을 친 이후 금융위 내부에서 새로운 혁신금융 과제 발굴에만 취해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며 "정책을 통한 진정한 금융혁신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이벤트용 혁신에만 급급했던 면이 있다"고 말했다.



"광고 아닌 중개"…금융당국 조치에 네이버·카카오 '멘붕'


금융위원회
빅테크를 포함해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은 이른바 '멘붕'에 빠졌다. 여전히 금소법상 중개에 대한 해석 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당장 진행 중인 사업과 앞으로 추진할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또는 자회사를 통해 필요한 라이선스를 획득하는 등 제도적 요건을 준수하며 금융서비스를 제공해 왔다"며 "금융당국 발표에 맞춰 소비자보호 관점에서 보완할 부분이 있는지 적극 검토해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네이버파이낸셜 역시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네이버파이낸셜은 금융위가 허락한 혁신금융서비스 위주로 금융 제휴 상품을 판매 중이다. 증권, 보험 등의 정식 라이선스를 취득해 금융 서비스를 연계하는 카카오페이나 토스와는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다.

온라인 플랫폼의 비교·추천 서비스가 '중개'라고 결론이 나면서 앞으로 라이선스를 따지 않고는 새로운 서비스를 탑재하기는 어렵게 됐다. 실제로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해 7월 자동차보험 비교 서비스를 준비하다가 손해보험사들과 수수료 갈등을 빚고 사업을 중단했었다.

당시 네이버가 손보사들에 11%에 달하는 수수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문제는 보험사들이 보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광고인지, 중개인지 명확하게 발생하지 않아 발생했다.

금융당국이 오늘날 처럼 온라인 플랫폼의 금융 비교 서비스가 '중개'라고 보게 된 계기가 됐다.

이에 대해 네이버파이낸셜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금소법 관련 판단의) 발단이 네이버파이낸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앞으로 금소법 위반 사례들을 참고해 사업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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