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깔아준 '판' 걷은지 6개월… 조인트벤처 추풍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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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7.20. 오후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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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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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조인트벤처 폐업설]
주제판 빈자리, 자체 콘텐츠 채워도 역부족
광고·협찬 등 수익사업 직격탄
업계 "언론사가 알아서 사업 접으란 뜻"
“네이버·언론사 조인트벤처 모델도 실패할 수 있다. 네이버는 언론사에 무한정 기회를 주기보다 어느 시기엔 사업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네이버가 언론사와 손잡고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기 시작한 2016년 한 언론사 관계자가 기자협회보에 전한 전망이다. 이듬해 조인트벤처가 13개까지 불어난 뒤 5년이 흐른 현재, 업계에선 지금이 ‘그 시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인트벤처들이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된 건 올해 1월부터다. 네이버는 지난 5~6년간 각 조인트벤처가 네이버 PC와 모바일에서 운영해온 주제판을 지난해 12월30일부로 종료했다. 네이버가 내세운 서비스 종료 이유는 ‘사용자 니즈에 따른 메인 개선 방향성’이었다. 그동안 조인트벤처들은 판에 맞는 주제로 콘텐츠를 생산·큐레이션한 대가로 네이버로부터 매년 10억원씩 받아왔는데, 주제판이 사라지면서 일부 콘텐츠 비용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이용자들이 선택해 구독할 수 있었던 주제판 아이콘들.


조인트벤처들이 주제별로 생산한 콘텐츠는 여전히 네이버에서 유통되고 있다. 주제판을 제외한 블로그, 포스트, 네이버TV 등 네이버 내 다른 채널을 통해서다. 이들은 네이버가 개별적으로 주문한 콘텐츠를 납품해 수익을 내기도 한다. 예컨대 차이나랩(중앙일보)은 ‘요리조리 중국 레시피’라는 중국음식 요리법을 네이버 지식백과 속 요리백과에 제공한다. 잡스엔(조선일보)도 미술백과에서 세계 미술관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콘텐츠 생산만으론 주제판의 빈자리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네이버 안에 있던 전용 매대가 사라지면서 조인트벤처 자체 콘텐츠와 브랜드 노출 빈도는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다. 조인트벤처를 운영하는 A 언론사의 전략부서 관계자는 “조인트벤처 설립 당시 우리가 인지한 전제조건은 주제판 운영이었다. 5년 만에 주제판을 없앨 줄 알았다면 어느 언론사가 참여했겠나”라며 “다들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네이버의 태도는 언론사가 알아서 사업을 접으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에서 조인트벤처의 영향력이 줄어든 만큼 콘텐츠 배너 광고, 협찬, 기업과 공동 행사 등 직접 수익을 내는 사업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B 조인트벤처 대표는 “네이버 지원금이 삭감된 것보다 주제판을 바탕으로 한 ‘네이버 효과’가 줄어 힘들어졌다”며 “예전엔 행사를 주최하거나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가 운영하는 판과 네이버 메인 주목도를 어필해 모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힘이 떨어졌다. 이제 사업 파트너들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네이버 품을 벗어나 성장보단 생존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된다. 곳곳에서 인력 유출이 잇따르고, ‘어떤 조인트벤처는 폐업을 결정했다더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C 조인트벤처 대표는 “한 곳이 먼저 접으면 도미노처럼 쓰러질 수 있으니까, 그러지 말고 다 같이 움직여보자 했는데 현실적으로 무작정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조인트벤처마다 대표가 있긴 하지만 직접 세웠다거나 투자한 것도 아니라서 의사결정에 한계가 있다.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라 직원들에게 어떠한 비전도 주지 못해 답답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처한 씁쓸한 현실은 조인트벤처 설립 초기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네이버에 이용당한다’는 비판적 시선이었다. 2016년 한창 모바일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네이버엔 이용자들이 주목할만한 콘텐츠가 필요했다. 언론사(51%)와 네이버(49%)가 지분을 나눈 조인트벤처들이 그 콘텐츠를 제공한 셈이다. 조선일보가 먼저 네이버에 제안해 잡스엔을 설립한 이후, 10개 남짓한 언론사가 네이버의 선택을 받아 조인트벤처를 세웠다. 매년 네이버가 지원하는 10억원에 부가 수익까지, 다른 언론사들의 부러움을 샀다.

문제는 이들 역시 네이버에 입점한 일반언론사들처럼 네이버 의존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수익모델도 언론사에서 해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D 조인트벤처에서 근무했던 한 기자는 “콘텐츠 경쟁력은 점점 떨어진 데다 네이버에 기댄 배너광고, 협찬, 행사, 기사형 광고 등 새로운 것 없는 수익전략을 구사하다가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네이버에 또 다른 기회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서, 조인트벤처 모델의 성패는 오롯이 각 회사에 달렸다. 네이버에서 독립해 콘텐츠·커머스 기업으로 자리 잡느냐, 아니면 실패 사례를 만드느냐다. A 언론사의 전략부서 관계자는 “‘우리는 해줄 만큼 해줬다’는 네이버를 보면 딜레마에 빠진다. 앞으로 네이버를 믿고 갈 수도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다”며 “조인트벤처를 비롯해 네이버 밖을 생각해야 할 때지만 뾰족한 답이 없어 깜깜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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