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개발자 입도선매'···IT 생태계 뒤흔든다

입력
수정2021.03.29. 오후 10:38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격화하는 ICT 인재 쟁탈전
업계 1위 네이버 "올 900명 채용"
이름값 앞세워 '연쇄이직' 불보듯
연봉 인상 파도에 IT공룡의 공습
자금 부족한 스타트업 '발등의 불'
'에이스 개발자' 뺏기면 고사 위기
[서울경제]

네이버가 정보통신기술(ICT) 개발자 ‘싹쓸이’에 나서며 인재 확보 전쟁 전면전을 선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ICT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관련 업계가 앞다퉈 급여를 인상해 인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는 가운데 명실상부 국내 1위 ICT 기업인 네이버가 ‘개발자 블랙홀’로 떠오른 것이다. 연봉 인상 여력이 부족한 중소 ICT 기업들은 신규 채용은커녕 기존 인력 지키기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고 이미 급여를 인상한 곳들도 ‘이름값’에서 네이버에 밀리는 만큼 채용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경기 성남 네이버 그린팩토리. /사진 제공=네이버


네이버는 29일 올해 신입·경력직을 포함해 총 900여 명의 개발자를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2~3년간 500~600명가량의 개발자를 채용해온 것에 비하면 2배 가까이 많은 인재 채용에 나서는 셈이다. 네이버는 기존에 수시 채용했던 경력직 채용도 아예 정례화했다. 매달 1~10일 경력직 채용 공고를 내는 ‘월간 영입’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한 것. 네이버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경력 인재들의 편의를 위해 채용 시기를 매달 초로 못박은 것이다. 아울러 신입 공채 인력들 중 비(非)컴퓨터공학 전공자들도 개발자로 전직할 수 있는 육성·채용 프로그램도 도입하기로 했다.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 올해 본격 진출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개발 니즈가 발생했다”며 “정기적인 채용 기회를 늘려 인재들의 지원 편의성을 확대하고 비개발 인력도 개발자로 커갈 수 있도록 육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ICT 업계는 연봉 인상 파도로 시작된 개발자 유치 전쟁이 이번 네이버의 역대 최대 규모 채용 선포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ICT 공룡인 네이버가 개발자 채용문을 활짝 연 만큼 단순히 급여를 높이는 방식으로는 기존 인력을 지켜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부족한 개발 인력을 신규 채용하기는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ICT 업계의 개발 인력 채용 수요가 매년 전국 컴퓨터공학과에서 배출되는 졸업생 수보다 훨씬 많은 상황”이라며 “임직원 급여를 인상해 겨우겨우 동요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가라앉혀 놓았더니 이제는 네이버가 이름값을 내세워 저인망식으로 경력 개발자를 휩쓸어가겠다는 선전포고를 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월 초 넥슨이 전 직원 연봉을 800만 원 인상하겠다고 밝힌 후 넷마블(251270)·엔씨소프트(036570)·펄어비스(263750)·크래프톤 등 주요 게임사가 연달아 연봉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이어 직방·딜리버리히어로 등도 개발자 연봉을 2,000만 원 대폭 인상하며 개발자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베이글코드·베스파(299910) 등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중소 게임사들도 1,200만~2,300만 원씩 연봉을 올리며 인재 유치·보존에 안간힘이다.

네이버는 연봉을 인상하지는 않았지만 전 직원에게 매년 스톡옵션을 지급하며 회사 성장에 발맞춘 보상을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이달 열렸던 주주총회에서 근속 1년 이상인 본사 임직원 3,253명에게 총 4,000억 원이 넘는 스톡옵션을 지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1인당 스톡옵션 지급 규모가 1억 원을 넘어선다. 연구개발(R&D) 투자도 규모 면에서 국내 최대다. 그만큼 네이버의 개발 인력 수요가 클 수밖에 없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 역시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매년 매출 25% 이상을 R&D에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R&D 투자비에 개발 인력 임금이 포함되는 만큼 회사 성장 속도에 맞춰 앞으로 개발자 채용을 꾸준히 늘려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ICT 기업들이 잇달아 급여를 인상했지만 개발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은 안정성·성장성·이름값이 확실한 네이버”라며 “기술 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와 함께 스톡옵션까지 더해 유혹하니 이미 한계까지 연봉을 올린 기업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연봉을 인상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 ICT 기업들은 네이버의 채용 강화 소식에 “재앙이 발생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모빌리티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발자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조건’이 안 맞아 목표한 채용 규모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며 “올 초 게임 업계 연봉 인상 소식 후에도 이직자가 속출했는데, 이제 매달 ‘에이스급’ 퇴사자가 나올까 걱정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관계자는 “초기 직원들끼리 미래 비전과 의리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당장 투자 유치가 급해 상장이나 스톡옵션을 얘기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스타트업들은 개발자를 구하지 못해 고사할 판”이라고 했다.

/윤민혁 기자 beherenow@sedaily.com, 정다은 기자 downright@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IT,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