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500억 달러(약 55조원)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월스트리트저널 예상 시가총액). 쿠팡이 지난 12일(현지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 창업 10년여 만에 전무후무한 ‘국내 기업의 미 증시 상장’이라는 도전에 나선 주인공은 김범석(43) 쿠팡 이사회 의장이다. 그는 신고서에서 ‘일자리 5만개’라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현재 쿠팡 직원은 약 4만명으로 간접 고용 인력까지 합치면 5만명 수준이다. 5년 이내 10만명을 고용하겠다는 포부다.
대학 졸업 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근무했다. 명문대 출신을 겨냥한 월간지 ‘빈티지미디어’를 설립하면서 다시 창업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를 매각한 이듬해인 2010년 한국에 돌아와 자본금 30억원으로 쿠팡을 설립했다.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소셜커머스 ‘그루폰’을 보고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에 소셜커머스를 도입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그는 무명의 벤처기업인에 가까웠다. 오히려 현직 기획재정부 장관의 외동딸이 쿠팡 설립에 함께 했다 해서 큰 이목을 끌었다. 바로 윤증현 장관의 딸 윤선주(44) 전 이사다. SBS PD 출신인 윤 전 이사와 김 의장은 하버드에서 인연을 맺었다.
쿠팡은 빠르게 성장했다. 계기는 2014년 로켓배송을 선보이면서다. 2016년 매출 1조원을 넘어선 이래 매년 40~60%씩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120억 달러(약 13조원)에 달한다. 전년(62억 달러)보다 90% 이상 늘었다. 2018년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가 넘던 영업 손실은 지난해 5억 달러(약 5500억원)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매출은 해마다 두 배 가까이 커졌지만, 적자는 절반 가까이 줄이고 있단 의미다.
사용 금액도 꾸준히 늘고 있다. 소비자가 쿠팡에서 쓰는 돈은 분기당 평균 256달러(약 28만원)였다. 2018년(127달러)의 배가 넘는다. 한 번 쿠팡을 사용한 이는 계속 쿠팡에 머물며 구매 금액을 늘려간다는 통계도 공개됐다. 2016년 쿠팡에서 100만원을 썼던 이는 지난해 359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로켓배송으로 대변되는 ‘락 인(Lock in, 소비자 묶어두기)’ 전략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이들의 인연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가진 것은 꿈과 근거 없는 자신감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김 의장이 가슴에 품고 세계적인 기업가를 꿈꿨다는 손 회장의 어록이다. 손 회장 역시 쿠팡의 적자 논란이 지속하는데도 2018년 2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며 김 의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드러냈다. 김 의장은 “경영에 대한 간섭이나 투자금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조건이 전혀 없다”(2016년 중앙일보 인터뷰)고 소개했다.
김 의장이 강력한 경영권 방어 수단인 ‘차등의결권’을 갖게 된 것도 투자자의 전폭적 신뢰 덕분이란 분석이 나온다. 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김 의장이 보유하는 클래스B 주식에 대해 1주당 29배의 차등의결권을 부여할 계획이다. 이대로라면 김 의장은 상장 후 지분 2%만 가져도 주주총회에서는 지분 58% 수준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김 의장이 가진 쿠팡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 의장은 지난해 급여로 88만 달러(약 10억원)를 받았다. 여기에 스톡옵션 등을 더해 지난해에만 총 1434만 달러(약 160억원)를 챙겼다. 장대높이뛰기 선수 출신으로 알려진 동생과 배우자도 2018년 이후 72만 달러(약 8억원)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임원 중 지난해 보수가 가장 많은 이는 지난해 쿠팡에 합류한 투안 팸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그는 연봉과 스톡옵션을 합쳐 2764만 달러(약 305억원)를 받았다.
쿠팡의 NYSE 상장은 4월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이에 맞춰 1000억원 상당의 주식을 직원에게도 나눠줄 것이라고 했다. 김 의장은 신고서에서 “지난해 대부분의 기업이 고용을 축소한 것과 달리 우리는 약 1조원을 투자해 7개의 새로운 광역 물류센터를 짓고 수 천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외에도 새로운 인프라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수조 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인영·권유진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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