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발레리나, 쇼핑몰 CEO 박현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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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패션 간예슬 기자] 스물한 살의 나이에 치열한 동대문 도매시장에 뛰어들었던 발레리나 박현선은 이제 어엿한 8년차 쇼핑몰 CEO가 됐다.

“지금은 동대문 밖에서 따로 만나 시간을 보낼 정도로 상인들과 친해졌지만 처음 도매 시장에 갔을 때는 그들의 기에 눌려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거나, 아예 제품을 구입하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많았어요.”

학창시절에 이어 대학에서도 발레를 전공했지만 박현선 대표에게 ‘패션’은 무용 이외에 기쁨을 주는 또 하나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여성스럽고 우아한 발레리나를 꿈꾸던 그가 ‘정신없는’ 동대문 새벽시장에 적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동대문 상인들은 매출이 좋은 업체와 거래를 해야 제품 주문량이 많고 수익이 남기 때문에 반대로 그렇지 않은 신생 업체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렸을 때는 철저하게 계산적인 동대문의 유통 시스템이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죠”

그가 사업을 시작했던 2005년은 ‘쇼핑몰 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라인 마케팅이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한 배에 너무 많은 사공이 몰린 탓일까. 한때 ‘반짝’ 떠올랐던 쇼핑몰들은 금방 문을 닫거나 업종을 변경하는 등 장기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박현선 대표는 확실한 콘셉트와 마케팅 방식으로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다.

“제가 마르고 왜소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사이즈가 작고 여성스러운 디자인의 옷을 판매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저희 고객들 중 저와 비슷한 체형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다수보다는 소수의 매니아층에게 맞춘 콘셉트가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도록 해준 것 같아요”

8년째 한 사업을 이어오면서 웬만한 일에는 ‘도’가 튼 그도 고객 관리에 있어서는 여전히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거래처가 주문받은 제품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 고객에게 품절 사실을 알리고 환불을 해줘야할 때 가장 난감하다고.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의류 공장들도 한 물건으로 오랫동안 수익을 볼 수 없게 됐어요. 보통 하나의 신상품을 만들기 위해 팀이 꾸려지는데, 주문량이 많지 않으면 팀이 유지될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고객들은 계속 새롭고 다양한 옷을 원하다보니 업계가 계속 ‘패스트 패션’으로 변해가고 있는 거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쇼핑몰 간의 경쟁도 훨씬 치열해졌다. 일부 연예인 쇼핑몰들은 경쟁 업체에서 판매 중인 것과 같은 옷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이른바 ‘미끼 상품 전략’을 쓰는 등 상도덕에 어긋나는 관행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저와 친분이 있는 도매상인한테 경쟁업체가 찾아와 자신이 더 많은 물건을 주문할테니 저희 업체와 거래를 하지 말라고 했다더군요. 사실 거래처의 입장에서는 주문량이 많은 업체가 ‘갑’이니 저와 친분이 없었다면 정말 거래를 중지했을 수도 있는 일이에요”

최근 박현선 대표는 동대문뿐만 아니라 중국과 홍콩 등 해외에서 제품을 공수하거나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블랙라벨’ 라인을 선보여 ‘고급화 전략’을 꾀하고 있다. 특히 요즘 유행하고 있는 글로벌 ‘Business To Business’ 방식은 국내, 외 업체 간의 거래를 이르는 말로, 박현선 대표 역시 중국과 싱가폴의 의류 업체와 교류하고 있다.

쇼핑몰 외에도 최근 자신의 전공을 살려 발레 아카데미를 오픈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현선 대표는 ‘교수’라는 또 하나의 꿈을 갖고 있다. 실제로 스타일리스트과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이기도 한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패션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처음 강의를 나갈 때 학생들이 저를 신뢰하지 않을까봐 걱정했어요. 그들이 알고 있는 저의 모습은 ‘발레리나 출신 쇼핑몰 CEO’이기 때문에 패션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는 편이에요. 가끔은 학생들이 보는 컬렉션 잡지를 빼앗아서 볼 때도 있어요(웃음)”

이렇듯 한 업체의 8년차 CEO이면서 발레학 박사, 스타일리스트과 강사 등 화려한 ‘스펙’에 뛰어난 외모까지 갖춘 그의 취미는 의외로 ‘바느질’이다. 스펙트럼이 넓은 커리어와 달리 소소한 것에서 재미를 느낄 줄 아는 박현선 대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여자다.

“쇼핑몰 창업을 하려는 학생들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니 절대로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해요. 확실한 콘셉트와 마케팅 방식을 갖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는 여러 가지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줄 때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앞으로 더욱더 노력해 창립 10주년이 되는 해에는 자체 제작 상품만으로 시장에서 경쟁하고 싶다는 그. 끊임없이 도전하는 박현선 대표의 2년 후를 기대해본다.

[매경닷컴 MK패션 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박현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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