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반인의 테슬라 Jun 23. 2022

일론 머스크의 마케팅이
먹히는 이유

※ ‘라맨’이 쓴 글입니다.


마케팅이 주업무는 아니지만, 종종 회사에서 마케팅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다른 어떤 때보다 고민이 많이 된다. 내가 알리려고 하는 제품이 뭔가? 서비스는 어떠한가? 이것들이 어떤 효용을 주는가? 옆 사람에게 말하라고 하면 쉽게 나올 수 있는 얘기들을,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려면 머리를 감싸쥐게 만든다. 


이때 눈에 들어온 두개의 장면.


#1


"머리 젖습니다, 옷 젖습니다, 신발 젖습니다,... 옷, 머리, 신발, 양말 모두 젖습니다. 아! 마! 존조로존조로존!"

'소울리스좌'라고 불리는 에버랜드의 근무자 영상이 인기다.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중이며 벌써 여러 종류의 편집본도 나왔다. 직캠 버전, 세로 버전, 1시간 노동요 버전 등등. 뭐 대단한 거 아니라는 듯이 툭툭 내뱉는 그녀의 발성에 중독된 사람들이 속속 생겨난다. 광고도 찍었다. 패러디도 속출한다. 


#2


넓은 대지에 세워진 큰 공장. 수십대 드론이 날아다니며 드론쇼를 펼치고 형형색색의 조명이 켜지며 무대를 비춘다. 세계 최고 부자가 된 일론 머스크가 카우보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채 등장한다. 미국 텍사스에 새로 만든 '기가 텍사스'의 오픈. "기가 텍사스는 모델Y 생산에 힘입어 미국에서 가장 큰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이 될 것입니다" 오픈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마치 파티에 온 듯한 즐거운 표정으로 일론의 말에 환호한다. 



소울리스좌? 과연 그럴까


이 두개의 서로 다른 장면이 하나로 합쳐진 건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임을 미리 밝힌다. 


소울리스좌 영상을 접한 건 우연 같은 유튜브 알고리듬 덕분이었다. 이전부터 아마존 익스프레스 근무자들이 화려한 군무를 추며 속사포랩 하듯 안내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소울리스좌 영상은 좀 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뭐랄까. 네이밍에 걸맞게 툭툭 던지듯이 얘기하면서도 일정하게 유지하는 톤과 정확한 딕션, 그리고 계속 듣게 만드는 중독성. 


유튜브 캡처


여러 사람들한테 보여줘봤는데 그중에서도 젊은 사람들, 그러니까 MZ 중에서도 Z에 해당하는 연령대에게 더 반응이 있었다. 더 재밌어 했고 더 대단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왜 그럴까? 


가장 그럴듯한 이유 중 하나는, 직장에서 내 모든 걸 바쳐 일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MZ들의 성향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영혼없는 눈빛, 텐션 낮은 다운톤으로도 할 건 다 하는 그녀의 모습이 공감되면서도 동경스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난 소울리스좌가 실상은 소울리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의 본질은 뭘까? 안내하는 것이다. 놀이기구에 탄 사람들이 안전하게 즐겁게 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가사도 보면 그렇다. 옷과 머리와 신발과 양말이 모두 젖으니 주의해라, 한 자리에는 두분씩 앉아라, 나가는 출구는 왼쪽에 뒷쪽... 하나 더 일의 특징을 찾는다면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해야 한다는 것. 모든 점에서 본질을 잘 꿰뚫고 있다. 그런 포인트에 많이들 공감하셨으리라 본다.



'소울풀니스좌' 일론


일론 머스크가 떠오른 이유는 이렇다. 난 평소 현상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 노력하는 일론을 좋아해왔다. 일론이 한 인터뷰에서 얘기하기도 한 ‘물리학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인데, 어떤 일에 대해 탐구할 때 거기에 얽혀있는 각각의 요소를 분리해 근본적인 속성부터 정확히 파악해보고 그걸 바탕으로 종합적인 그림을 완성해나간다는 것이다. (유튜브 링크 참고). 최근 일론이 FT와도 인터뷰를 장시간 인터뷰를 했는데, 이 문답에서도 그러한 모습들이 많이 포착됐다. (전문 번역 영상 링크) 몇 가지 나열해보자. 


Q. 도널드 트럼프가 트위터로 돌아오게 할 계획인가?

A. 이건 근본적으로 ‘트위터가 이용자를 영구 정지해야 하나?’라는 질문입니다. 영구 정지는 아주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트럼프는 Truth Social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각자의 포럼에서 활동하면 단일 포럼일 때보다 더 분열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구 정지를 풀 생각입니다. 잘못된 트윗이 있으면 그걸 삭제하거나 보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 

Q. 오토파일럿으로 인한 사고와 관련해선?

A. 자율 주행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90%를 살렸다고 가정해도 나머지를 살리지 못한 10%의 유족들은 여전히 우릴 고소할 것입니다. 큰 틀에서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선에 대해 ‘인식’만 하기보다 현실적으로 선을 ‘실천’하는 것이 좋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선을 실천하기보다 인식만 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을 저는 완전히 경멸합니다. 

Q. (보링 컴퍼니) 개인 이동수단의 다음 혁신은? 

A. 터널이 과소평가 된 것 같습니다. 터널은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층 다층 건물에서 3D에 살고 있고 2D인 도로를 통해서 그곳에 드나들고 싶어합니다… 사람도 3D로 이동하고 3D로 올라가거나 3D로 내려가면 건물의 차원과 일치하게 됩니다. 터널을 단일 레이어로 보지 말고 여러분이 원하는 수만큼 늘릴 수 있는 레이어로 생각해보세요. 교통 체증을 크게 낮추는데 여러 레이어까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글을 읽는 당신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꽤 유능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회사나 학교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와는 정반대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랄 때가 많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포장하기에 급급하거나, 표면적으로만 보이는 요인들만 해결하고 치워버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놀랍게도 그러한 기업들도 많다. 대단한 걸 하는 척, 혁신을 이뤄내는 척, 세상을 바꾸는 제품을 만드는 척 포장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공통점은, 핵심은 건드리지 않은 채 과장과 수사를 즐기며 모호하다는 것이다.

 

테슬라를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일의 방향이 명확하고 심플하다. 테슬라는 왜 전기차를 만드는가? 그들의 미션은 지속가능한 에너지(sustainable energy)로의 전세계적인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 기치 아래 100년 넘게 이어온 내연기관차의 위상을 완전히 뒤엎고 전기차의 세계를 열었다. 태양광, 에너지 저장장치(ESS) 사업도 같은 선상에 있다. 


비영리 재단이나 펀드를 만들어 단순히 슬로건을 외치는 수준이 아니라, 품질 좋고 세련된 제품을 만들며 비즈니스적으로 이 문제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내연기관차, 오일업계, 반태양광 그룹, 심지어 친환경을 추구한다는 빌 뭐시기 등으로부터도 온갖 반대와 야유, 방해 공작을 받고 있지만 정면 돌파하고 있다. 



스토리텔러


이렇게 진심으로 일을 대하니 스토리텔링도 세련돼진다. 


다시 두번째 장면으로 돌아온다. 텍사스에서 네번째 자동차 공장을 열며 일론이 한 얘기이다. “팩토리도 하나의 프로덕트다. 생산? 생각보다 어렵다. 이 팩토리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자동차 공장이다.” 높은 생산성을 가진 공장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일테지만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보면 이렇다. 


텍사스는 세계 3대 원유 중 하나인 WTI(West Texas Intermediate)를 생산해내는 곳으로, 기름으로 부유해진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전기차 공장을 지어냈다. 내연차가 지고 전기차가 떠오를 것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이벤트이기도 한 거다.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가보자. 테슬라의 첫번째 공장인 프리몬트 팩토리도 GM과 도요타 합작사로부터 2010년 인수한 것이다. 다시 말해 내연기관 기업으로부터 건네받은 것. 인수 직전 당시엔 노조 때문에 문제가 많았었다고 한다.) 마치 영화나 미술작품에서 은유를 읽어내는 것과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일론은 이렇게 히스토리와 타이밍을 잘 이용한다.



광고하지 않고 광고하기


많이 알려졌다시피, 테슬라는 매체나 플랫폼을 통해 비용을 써서 광고하지 않는다. 그래서 화제가 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가장 가까운 에피소드는 올해 초 슈퍼볼 때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이벤트 중 하나인 슈퍼볼의 광고 단가는 초당 수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기아와 GM, BMW 등 여러 자동차 기업들이 참여해 자신들의 전기차 전환 프로젝트를 광고했는데, 슈퍼볼 경기가 끝난 후 정작 테슬라의 차량 판매가 늘었다는 것. 재주는 곰이 넘었는데 돈은 테슬라가 벌었다


테슬라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걸 자신들만의 채널을 통해 알린다(물론 일론의 트윗도 포함). 매체에 돈을 쓰지 않으므로 영향력있는 매체들이 테슬라를 좋게 보도할 리 없다. 사고라도 한번 나나 치면 까대기 바쁘다. 그래서 그런걸까? 테슬라를 좋아하는 팬들이 오히려 활발하게 제품을 알리고 장점을 홍보한다. 기업들이 그토록 바라는 ‘바이럴 마케팅’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돈 많고 힘센 소수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들이 직접 분별하고 다른 이들과 지혜를 공유하고 집단 지성의 데이터베이스를 활발하게 쌓아나간다. 이들은 왜 테슬라를 응원할까? 그건 테슬라의 진심이, 그리고 테슬라가 집중하는 업의 본질이 그들에게 와닿았기 때문이 아닐까? 비즈니스가 추구해야 하는 마케팅은 정석적으로 이렇게 돼야 한다는 걸 곱씹어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나도 이러한 마케팅에 넘어간 케이스다. 오늘, 1년 여의 기다림 끝에 모델Y를 인도받았다. (지난 글 참고. 테슬라 모델Y를 주문하고, 6개월 동안 기다린 기록) 기대한 만큼 기쁘고 예상했던 것보다 좋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에 기여한 것 같은 감성도 얻었다. 즐겁고 설레는 날이다.


출고 1일차 따끈따끈한 모델Y


작가의 이전글 테슬라 ‘두고’ 떠나는 제주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